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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7일





마태복음 14장 13-21절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님은 침례요한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생각하고자 침례요한이 있었던 빈 들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큰 무리가 예수님이 빈 들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사촌이자 동료인 요한을 잃으셨습니다. 요한의 죽음은 분명 예수님이 앞으로 당할 일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 슬쩍 자리를 피했는데 무리가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 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애도하며 생각할 시간도 빼앗는 수 많은 ‘무리’들이 좋게 보일리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기서 보인 행동은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화를 내거나 짜증 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단어는 “스프랑크니조마이”로 유대인들이 애끓는 아픔의 세월을 보낸 디아스포라(Diaspora)상태로 살아가기 시작할 때 생겨났다고 합니다. '불쌍히 여기다'라고 하는 말은 내장 혹은 심장 등 인간의 내부로부터 그 아픔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히브리인들이 '내장' (스플랑크나) 을 인간의 깊은 감정이 거하는 곳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애끓는 심정으로 그들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온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저녁 시간이 다가 옵니다. 옆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음이 급해 졌습니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을 수 있도록 하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자들의 제안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비 현실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쓰인 동사 “도테"는 즉각적이고 긴급한 행동이 요구되는 명령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남자만 5천명에 이르는 이 군중을 먹일 능력이나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계셨는데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굶주린 군중들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워 주는 것과 동시에 물질적인 양식 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 해야 할 사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빈들에서 마귀에게 돌로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는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돌로 떡이 되게 하는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것은 급하게 떡을 만들어 주라는 말씀 보다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음을 알게 하고, 그 말씀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사명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명령에 제자들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라고 답합니다. 현실적으로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가진 작은 도시락으로 남자만 5천 명이 먹고 12 광주리에 남은 조각이 가득 차게 거두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마음으로 무리를 보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배고픈 그들을 배부르게 하시는 참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헤롯은 침례요한을 참수하는 무자비 함을 보이고, 아파도 참된 의사를 만날 수 없고, 배고파고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빈 들과 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병을 고치시고, 참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예수님을 경험하셨는지요? 우리의 아픔, 배고픔을 아시고 위로하시고 치유 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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