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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일




마태복음 7장 13-20절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저는 어릴 때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은 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좁고 길이 협착하게 만드셨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큰 문, 큰 길로 만들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찾아 들어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거죠. 하지만, 살다보니 길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찾는 사람이 적으면 숲으로 가려지고 결국 그 길을 찾기도 어려워 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길이 없는 곳도 사람들이 필요하여 찾기 시작하면 사막에도 실크로드가 생기고, 그 길은 세계로 이어지는 무역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부와 영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할까요? 하나님이 심술 궂어서 생명의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그렇게 만드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길은 누구나 갈 수 있고, 그 문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길과 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당장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뺨을 맞을 때 왼쪽 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길을 외면합니다. 쉽고 빠르게 보이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다보면 수 많은 유혹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버스를 이용하여 다음 목적지까지 쉽게 가는 것입니다. 특히 한 여름에 그늘 한점 없는 메타스퀘어를 걸어갈 때 많은 순례자들이 버스를 이용하여 그 구간을 점프할 수 있는 선택에 유혹을 받습니다. 만약 버스를 선택하면 쉽고 편하게 다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지만, 그 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 많은 경험을 포기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람, 만날 수 있는 사람,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소중한 시간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큰길, 버스, 택시 등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 선택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 큰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문으로 가는 길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성공이 보장된 길이 아닙니다. 편한 삶을 포기 해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꽃으로, 금으로 포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외롭고 힘든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좁아지고, 협착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은 혼자 외롭게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동행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좁은 길로 한 없이 걸어가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환호하거나 영웅처럼 떠 받들어 주지 않습니다. 침묵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힘든 발걸음을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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