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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ncyeollin

2023년 12월 4일






[욥29:1-25]

1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4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5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6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7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8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9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10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11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12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13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14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16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17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18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19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이슬이 내 가지에서 밤을 지내고 갈 것이며

20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21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22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

23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24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25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이제 욥기의 이야기는 막바지로 접어듭니다. 욥은 엘리후가 이야기에 끼어들 때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독백형식으로 말을 합니다(29~31장). 오늘 본문 3절, 4절, 5절, 7절에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입니다. 그는 과거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회상합니다. 그 때에는 남녀노소 그리고 빈부귀천에 속한 모든 자가 다 욥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욥은 부르짖는 빈민, 도와줄 자 없는 고아, 망하게 된 자, 과부, 소경, 절뚝발이, 빈궁한 자, 생소한 자(나그네나 이방인) 등 필요를 가진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불의하고 악한 자를 대적했다고 회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두 가지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3b). 욥은 그 때에도 암흑 가운데를 지나는 삶을 살았었지만 하나님의 등불이 비추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살았던 방식은 그냥 편하니까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그 빛을 따라서 산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4절에 보면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새번역은 “내 집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지난날에 대한 욥의 회상은 단순히 잃어버린 자녀들, 잃어버린 부, 잃어버린 건강, 잃어버린 친구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잃어버려서 슬퍼하는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입니다. 과거 자신이 누리던 모든 행복의 조건이 어디서 온 것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비교하면 본질적인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욥은 과거나 지금이나 인생을 사는 것이 암흑을 걷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등불의 비췸을 받으면서 걷고 있는가, 아니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암흑 속에서 주저 앉아 있거나 아니면 아무 소용도 없는 자기 지식과 경험이라는 시각을 의지해서 걷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고백의 삶이야 말고 우리의 행복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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