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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6일







[빌4:1-23]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오늘 본문의 말씀중에 4절의 말씀을 집중해서 잠시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기뻐하라는 명령이 두 번 반복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뻐하고 싶지만 기쁨을 빼앗는 일들, 사건 사고, 주변 환경 등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명령을 이루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바울이 말하는 “항상 기뻐하는" 삶은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의미 없이 웃는 그런 기쁨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먼저, 주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주안에 있다는 것은 나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종이라는 것은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의 절대자이고 나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종이라는 신분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은 학대당하고 핍박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미는 더 이상 내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완벽하게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시나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 뿐입니다. 그것은 종으로서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보장은 주인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 근심으로 인한 것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주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 있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주님 밖에 있는 것들이 주는 악한 것들로부터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우리 눈으로 볼 때 안락함이 있을 수 있고 쾌락이 있을 수 있고 성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궁극적인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룻을 아십니까?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이 그에게 안전함, 평안함, 안락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그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그것과 더불어 불안함, 아픔, 초조함, 외로움, 괴로움 등을 동시에 제공함으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요소를 빼앗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 안에 있음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안에 있다는 것은 주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자유라는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내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 때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유는 순간적으로 짜릿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을 찾을 때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기뻐하십니까?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나의 위치를 먼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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