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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6일





욥기 3장 1-26절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후에.” ‘그 전의 일’은 1-2장의 내용입니다. 욥에게는 양, 낙타, 소, 암나귀 등의 가축이 10,000마리가 넘게 있었고, 아들딸 10남매가 있었으며, 많은 종들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단 하루 만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욥의 몸에는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성종양이 가득했습니다. 욥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찾아온 친구들이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고, 알아보고서는 그들도 너무 기가 막혀서 일주일 동안 그의 곁에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7일 밤낮이 지나고서 마침내 욥이 입을 연것입니다. 오늘부터 묵상하는 3장부터 31장까지는 욥과 세 친구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논쟁에 가까운 대화를 하는 내용인데, 3번에 걸쳐서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욥기는 4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욥기의 내용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욥기의 내용은 1-2장과 마지막장인 42장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1-2장에서 욥이 고난을 당했을지라도, 42장에서 다시 복을 받았으니 욥의 믿음을 그리고 욥의 인내를 본받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3-41장까지, 39장이라는 긴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이 1-2장에서 42장으로 바로 넘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 속에는 3-41장이라는 고난의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깊어지고, 더욱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소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욥이 쏟아내는 언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합니다. 욥의 언어는 불경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고 말합니다. 욥의 고난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이해하고 읽으려 해도 마치 그의 부모님을 저주하는 듯 한 표현이 불편하게 만듭니다. 또한 6절에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이라는 표현은 이 세상을 빛이 있으라하시며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하는 표현입니다. 오늘 26절 속에 나오는 욥의 표현들은 어느 곳 하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믿음의 선배들이 가졌던 “감사"와 “찬양"의 모습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같은 욥의 표현들을 그대로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우리가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감사해야 하며,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진짜 고난 속에서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약간의 감기 증상에서는 기쁨을 유지할 수 있지만, 중환자 실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에게 즐거워하고 감사하라고 권면할 수 있나요? 욥은 우리에게 가식의 허울을 벗을 자유함을 제공합니다. 고통 중에 탄식할 수 있는 자유,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께 따져 묻고, 내가 도대체 왜 태어 났는지 원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유함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괜찮은척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욥의 이러한 몸부림 가운데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그의 고통을 어루 만져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고통중에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어깨를 감싸 안으시며 괜찮다고, 울라고..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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