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3년 11월 30일







[욥24:1-25]

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6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7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8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10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11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16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22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23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25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어제와 오늘 본문인 23-24장은 22장의 엘리바스의 3번째 말에 대한 답변입니다.

엘리바스는 여전히 욥의 지금의 상황은 그가 죄를 범한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까닭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엘리바스가 아니라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어제 묵상한 욥기 23:10-12절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아신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계속 나를 테스트 해 오셨지만,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도 99.9%의 금과 같이, 항상 내 삶에도 다른 불순물이 없이, 하나님께 온전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욥에게는 소망의 빛이 있습니다. 23: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하나님은 자신을 그저 억누르기만 하신 분이 아니시라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분이시라는 소망의 확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욥은 풀지 못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 시선을 자신에게서 세상으로 돌립니다. 세상을 바라보니 너무 부조리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러가지 예를 들어 말하지만 4절만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악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압제 하에서 그들은 숨어서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시시대 기드온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미디안 연합군의 착취가 극심했습니다. 그 착취가 7년이나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더 이상 집에서 살지 못하고, 산 속에 있는 동굴이나 바위 틈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 시대에는 이방인 군대의 착취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악한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고 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용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쫓겨난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 먹을 것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빈 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려고 해도 덮어줄 이불 조각 하나 없다고 합니다. 산에서 비를 만나면, 비를 피할 방편이라고는 바위 밑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 우리도 동일하게 답답한 마음이 생깁니다. 힘 없고 착한 사람은 늘 가난하고, 힘쎄고, 나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세상의 부조리는 수천년 동안 이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 뭐 하시는가? 라는 답답한 마음이 생길 뿐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한가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욥은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그 고통을 연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욥은 오롯이 자신의 고통에만 주목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나만 고난 받는다고 탄식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모진 시련을 주느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랬던 욥이 자기처럼 고난 받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23장에서 하나님을 찾더니, 24장에서는 고난 받는 이웃을 본 것입니다. 김기현 목사는 이렇게 변화하는 욥을 보면서 욥의 고통이 끝나가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고난이 끝나 가고 있는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나만 아프다고, 왜 나에게만 이런 고난이 있느냐고 소리치고 있다면, 아직 끝은 멀었다. 하지만,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로 몸부림치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보인다면, 바로 그때가 고통의 연대기가 끝나는 시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난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한 고통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나의 고통을 통해서 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울부짖을 수 있다면, 그 고통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시선을 갖기를 바랍니다.


Kommentar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