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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3일






욥기 10장 1-22절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10장은 하나님이 왜 자신을 고통가운데 있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항변이 지속됩니다. 욥이 하고 싶은 말은 2절에 잘 요약되고 있습니다. “나를 정죄하시 마시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무슨 까닭으로’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과 대면하게 됩니다. 행복하고 기쁜 날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슬픈 날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맛보는 감격의 날이 있는가 하면, 주님의 말씀을 어느새 잊은 채 세상의 논리 가운데 살다가 우리의 민낯을 발견하고 처절하게 무너진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힘든 날은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이 ‘무슨 까닭’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당하는 일 때문입니다. 욥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펼쳐진 감당할 수 없는 현실과 육체적인 고통도 그를 힘들게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욥을 괴롭게 한 것은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이 ‘무슨 까닭으로’ 일어났는지, 하나님의 참뜻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처절하게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말에 의한 상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한 갈급한 심정으로 자신의 처지를 토로합니다.

7절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누구라도 주님의 손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할 자가 없다는 고백은 바로 자신이 주님의 손에 있기에 자신은 악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말입니다. 인생 중에 누구라도 하나님을 벗어나면 벗어나는 그 순간 예외 없이, 죄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그 무엇도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강조하면서 흠없는 삶을 살았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욥은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비유를 통해 자신을 빚으신 손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인도해 오신 주님의 배려를 계속적으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8절에서 12절 말씀을 새번역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나를 빚으시고 지으셨는데, 어찌하여 이제 와서, 나에게 등을 돌리시고, 나를 멸망하시려고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진흙을 빚듯이 몸소 이 몸을 지으셨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를 티끌로 되돌아가게 하십니까? 주님께서 내 아버지에게 힘을 주셔서, 나를 낳게 하시고,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살과 가죽으로 나를 입히시며, 뼈와 근육을 엮어서, 내 몸을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고, 나를 돌보셔서 내 숨결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욥은 하나님만이 지으시기도, 그 지으신 것을 멸하시기도 할 수 있는 분이심을 고백하면서 그 진흙 그릇이 금세라도 깨어질 것 같은 다급한 처지를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시며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욥은 자신의 들숨과 날숨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이제 욥은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의 부끄러움으로, 자신의 환난을 자기의 눈으로 보는 굴욕으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15절입니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욥은 하나님에 대해 죄악을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죄의 결과에 대한 책임 뿐 만 아니라 죄의 동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지적하시는 공의로운 분임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강조합니다. 그가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욥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때론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 여정 가운데 이해할 수 없지만 욥과 같은 고난과 연단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끝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내 생명을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을 고백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걸어가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신묘막측한 은혜의 지도와 불가사의한 섭리의 지도를 그리는 인생의 길을 걷게 하신 분도 욥이 믿었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욥과 사도 바울이 믿었던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 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사순절 셋째 주간을 살아가며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와 섭리의 지도를 순종으로 그려가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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