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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7일






열왕기상 21장 11-29절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오늘 본문에서 세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합 입니다. 아합은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어른 아이의 특징이 많이 나타납니다. 한 나라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도적이지 못하고 투정과 짜증을 내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모습의 절정을 볼 수 있습니다. 25절에 보시면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고 하십니다.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는데, 이 악을 행한 것도 자신의 주도가 아니라 옆에 있는 아내 이세벨의 충동으로 그러한 악을 저질렀다고 말씀합니다. 아내의 충동으로 자기 자신을 팔 수 있는 남자 영적으로 나약한 사람입니다. 아합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입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도 아합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에도 영적으로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조그만 상처에도 근심하고 답답해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근심하고 답답해 합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그러한 특권을 이세벨과 같은 유혹하는 자에게 넘겨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상당히 달콤하거든요. 자기가 갖고 싶은 포도원을 주기도하고, 자기에게 권력을 주기도하고, 자기에게 기쁨을 전달해 주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은 그 결과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대단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세벨에게는 징계의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습니다. 아합의 잘못 뒤에는 이세벨이 뒤에서 조종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세벨에게 너.. 절대로 그러지 마라.. 고 하실 법 한데… 왜 그런말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본문을 묵상하다가 “확신범"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사전에서 “확신범인은 자기의 사상을 충실히 지키려고 한 결과 범행하는 것이므로, 형벌로써 그 확신을 버리게 하기는 어렵다”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① 형법이론상으로는 확신범인에게 위법성(違法性)의 인식이 있느냐 또는 기대가능성(期待可能性)이 있는가 등의 문제가 생기고, ② 형사정책상으로는 확신범인에게 보통의 형벌을 과하는 것이 적당한가 또는 보안처분 ·부정기형(不定期刑)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러한 확신범에게는 아무리 이야기 해도.. 아무리 처벌해도 변화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세벨은 완전히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공갈 협박하고, 갈취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의 의심도 없이 행하는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이세벨은 이 세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를 속고, 속이고, 싸우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가르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이같은 이세벨의 세력이 막강합니다. 나봇을 죽일 때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며 돌을 들어 나봇을 죽이게 한 것처럼 우리가 깨어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세벨과 같은 충동질에 놀아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셋째 부류는 두명의 불량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두명의 불량배는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주장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 구분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거짓 증언에 사용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서슴지 않고 거짓으로 증언해서 나봇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말로는 불량배라고 번역했지만 사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단어냐 하면 쓸모없는 자들, 가치 없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생각했냐 하면 자기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기 못해서 다른 사람의 뜻에 의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불량배… 언뜻 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와 같은 습성들이 있습니다. 남을 의지하는 습성, 절대로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습성, 아무 생각 없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량배와 같은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 보면 이런 부류의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몇몇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먼저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5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만족을 남편을 통해서 얻으려 했던 여인입니다. 자기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느 남편을 통해서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고, 결국에는 세상에서 마저 손가락질 받으며 만족함 없이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에 휘둘리고, 세상에 휘둘리는 나약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영원한 영생수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는 그 기쁜 소식을 혼자 간직할 수 없어 그 자리를 잃어나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예수를 소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난 후 변화 되었습니다.

저는 사도바울도 떠올랐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확신범이었습니다. 유대교안에서 그가 가진 사상 그가 가진 종교 그것이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죽이러 다니던 사람이었죠. 어느 누구도 그를 변화 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후 그는 새사람이 되었고 완전히 예수님을 위해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또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실 때 예수님의 우편에 같이 못밖혀 있던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삶은 불량배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세상에 못된 짓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변화되어 낙원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가능케 하십니다. 예수님이 능력이십니다. 예수님이 변화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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