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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ncyeollin

2023년 1월 5일






민수기 3장 40-51절

4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남자를 일 개월 이상으로 다 계수하여 그 명수를 기록하라

41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4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계수하니

43 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된 처음 태어난 남자의 총계는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었더라

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5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46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가 레위인보다 이백칠십삼 명이 더 많은즉 속전으로

47 한 사람에 다섯 세겔씩 받되 성소의 세겔로 받으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48 그 더한 자의 속전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줄 것이니라

49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

50 곧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로 천삼백육십오 세겔이라

51 모세가 이 속전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돌리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따로 세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따로 세우라고 하셨을까요? 어제도 잠시 말씀드렸듯이 이는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보호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가축의 첫 태생까지 모두 보존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축의 첫 태생에 대해서도 그 소유권을 선언하시고 그것을 바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물론 바치는 방법은 사람의 경우처럼 ‘대속의 원리’에 따라 레위인의 가축 전부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소유한 가축의 첫 태생을 대신케 한 것입니다. 이로서 하나님은 레위지파의 모든 남자와 가축에 대한 소유권이 있음을 선언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속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인원 계수를 끝내 보니, 이스라엘 전체 장자의 숫자에 비해 그를 대신한 레위인의 숫자가 273명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한가지 방법을 제시하셨는데, 한명당 5세겔씩 총 1365세겔을 속전으로 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속전의 원래 의미는 얽매인 것을 “끊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가 발전하여 어떤 사람이 값을 지불하거나 혹은 그에 상당하는 대체물을 줌으로써 다른 사람으로부터 특정한 사물의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22000명으로 퉁치면 되지 너무 세세하게 돈을 받으려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함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원래 장자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그들의 죽음이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생명과 삶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성막으로 부를 수도 있고, 생명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대신하여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전에서 평생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속전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73명의 생명도 하나님이 취할 수도 있었지만 방법을 제시하여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 방법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돈을 취할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살릴 방법, 구원의 길을 제시 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같은 “속전"이라는 말의 사용은 구속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애굽의 노예로 전락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속하신' 역사적 사실(신 15:15)은 끊임없이 이방 세력에 의해 괴로움을 겪던 이스라엘에게 무한한 소망을 주곤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한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같은 하나님의 대속 행위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사 35:10;51:11). 그리고, 이 말은 마침내 죄악으로부터의 용서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었고(시 130:7, 8),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택한 백성을 죄와 저주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대신 십자가에 바치신 행위를 나타내는 '속량하다'라는 말로 이어집니다(갈 3:13; 4:5). 따라서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친히 '대속물’로 칭하신 것도 이러한 구속사의 흐름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은혜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구원받아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믿으십니까?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 되었음을 믿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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