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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5일



마태복음 4장 12-25절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실 때도 여전히 세상은 어둠속에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안티파스가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안티파스는 방탕함으로 유명했는데, 그는 사바티안 왕인 아레타스의 딸과 이미 결혼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안티파스는 헤롯 빌립에게 시집간 헤로디아에 반해 그를 유혹하여 헤로디아가 빌립과 이혼하게 하고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정의는 사라지고 인간의 추악함만 남은 왕궁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이 비판한 것입니다. 요한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발언에 힘이 있었고, 이 소식을 들은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수로 (막 6:19) 여기게 되었고, 안티파스는 요한을 잡아 가두게 됩니다.

요한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에 예수님은 잠시 갈릴리로 돌아가 거하십니다. 어릴 때부터 자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거주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17절에서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외침은 침례요한의 외침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천국의 복음을 전했고, 이제 예수님은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여시며 회개하여 천국 백성이 되기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마태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크게 세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제자 삼는 사역입니다. 18절에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만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당시 모든 유대 아이들은 13살까지 랍비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함께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우수한 학생만 선발해서 랍비의 후계자로 삼습니다. 선발된 후계자는 랍비와 함께 기거하면서 스승의 삶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행동, 말투, 사고방식 등 하나에서 열까지 스승과 판박이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권유는 자신과 직접 기거하면서 가르침을 받으라는 의미였고, “사람을 낚는 어부”는 이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랍비라는 직업을 의미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와 닿는 의미가 바로 예수님이 한 사람의 랍비로서 자기들을 제자로 받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곧 바로 주님을 따른 가장 큰 이유는 주님의 거역할 수 없는 신적 권능 때문이지만, 그 이후 제자들을 비롯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랍비라고 호칭한 것을 보면 이런 해석에 타당성을 더해줍니다.

예수님은 제자 삼는 일을 가장 먼저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을 통해 확장 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또 다른 제자를 만들고 또 다른 제자를 만들며 누룩이 퍼지듯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퍼지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사역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인 랍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다른 모든 랍비는 이스라엘의 선민사상과 율법준수와 제사제도를 지식적으로만 전수했습니다. 율법을 실제 상황에 적용시키려 만든 613개의 세부적 규정을 전부 외우게 하고 사람들이 규정대로 따르는지 감독하는 기술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임을 가르쳤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예수님이나 다른 랍비나 인용한 교과서는 공히 구약성경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반 랍비는 하나님 말씀에서 인간의 계명을 추출해 내어 더 우위에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내용이 틀렸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전부 옳고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분을 진정으로 경배하기보다는 그분을 섬기는 방식인 성전제사와 율법준수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하나님께 정성을 바쳐서 점수를 더 잘 따내는 법만 고안했던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랍비나 제사장들의 신분과 권한만 높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같은 구약성경을 인용했지만 차원이 전혀 달랐습니다. 구약성경 전부가 당신에 대해 기록한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가르침과 사역의 초점은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여 죄에서 구속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가르치되 그 구원을 얻기 위해선 바로 자신을 믿고 따라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셋째는 치유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병든자를 고치시며 회복하십니다. 이 치유사역은 단순히 병자를 고치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보여 주시는 사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심으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픔이 회복되는 나라입니다. 천국의 모습을 환상으로 본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아픔도, 슬픔도, 죽음도 다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임을 예수님은 치유 사역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천국은 어디에 있나요? 미래에 존재할까요?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 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지만 여전히 악과 싸워야 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며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는 악이 없기에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모습이겠지만 지금 우리의 삶에서 그 맛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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