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말씀
욥기 11-14장
매일성경묵상
사무엘상 6장 1절 - 7장 2절
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빼앗아 온 여호와의 법궤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자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법궤를 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블레셋의 대표자들이 모여 하나님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의 복술자와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도에 대해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3절에 보면 ‘거저 보내지 말고’ 속건제를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그 시대에는 신에 대한 경배시 예물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여호와의 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예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고대근동 지역에는 남의 물건을 불법으로 취했다가 돌려보낼 때에는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언약궤를 빼앗았다 다시 돌려보내는 데 대한 보상금을 드리라고 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언약궤를 돌려 보낼 때 속건제 이외에 몇가지를 더 준비했습니다. 먼저, 금쥐 다섯입니다. 당시 블레셋은 5지방으로 각각 방백들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각기 1마리의 금쥐 다섯은 블레셋이 받은 독종이 쥐에 의한 것이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금독종은 블레셋 사람들이 입었던 질병의 종양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블레셋은 이처럼 재앙의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저주가 풀리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새수레와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 둘을 준비합니다. ‘새 수레’는 다른 어떤 일에도 사용하지 않은 수레입니다. 블레셋은 이런 새 수레를 만들어 언약궤를 실으려 한 것은 여호와께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멍에 매어 보지 아니한~’ 새 수레와 더불어 아직 짐을 메어 보지 못한 소를 택한 것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세속적인 일에 사용되어진 적이 없는 수레와 소를 사용하여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고자 한 것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신에 대한 두려움과 예의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을 진행했고, 그들의 예상대로 수레는 어떤 방해나 주저함도 없이 이스라엘을 향해 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새끼를 둔 소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것을 보고 아스돗으로 돌아 갔습니다. 블레셋의 영토를 떠난 수레는 이스라엘 성읍 벳세메스로 곧장 올라갔는데, 벳세메스는 문자적으로 ‘태양의 집’이라는 뜻이며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0키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법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법궤가 돌아온 시기가 5-6월 즈음이었음을 암시합니다. 벳세메스에서 처음 법궤의 귀향을 본 주님들은 크게 기뻐하며 여호와의 법궤를 맞이했습니다. 7개월전 전쟁터에서 법궤를 빼앗겼을 때 실로에 임했던 슬픔과 통곡이 기쁨과 혼호성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법궤가 이스라엘 영토로 돌아왔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심했던 “아직도 우리가 여호와의 백성인가?”라는 질문은 어느 정도 해소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합니다.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법궤 안을 들여다보는 불경스러운 일을 저질러 큰 재앙을 초래한 것입니다. 이 일로 70명이 죽었습니다. 이 일로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비명에 찬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법궤를 옮겨 가도록 합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법궤는 기럇여라임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이십 년”을 머물게 되었고, 훗날 다윗이 이곳에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벳세메스 사람들이 벱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낸 일과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자신의 영토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로 보낸 일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일어났던 한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이 가다라 지방에서 두 사람에게 들린 귀신들을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셨고, 그 결과 돼지들은 스스로 바다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 일을 지켜본 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기는 커녕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끌고 와 함께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간구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것 역시 그분의 은혜입니다.
물론 이번에 법궤가 블레셋 영토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온 것은 과거 여호수아 시대에 법궤가 처음으로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와 같이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궤가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것은 법궤가 처음으로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던 것처럼, 앞으로 이 땅에 새 시대가 시작될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기쁨으로 여호와의 궤를 맞이하고, 그 앞에 겸손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경거망동 하지 않고, 겸비하여 주 안에 거하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