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역대상 20-22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21장 15-25절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베드로와의 대화 장면을 여러번 읽어 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왜 베드로에게 세번이나 사랑하냐고 물어 보셨는지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가 미덥지 않아서 였을까요? 특이한것은 베드로가 사랑을 고백할 때 예수님은 “그래 알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좋다. 그럼 내 양을 먹여야, 내 양떼를 돌 보아라. 내 양떼를 먹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번의 사랑하냐는 질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번 사랑을 고백받으며 그가 죄책감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랑 고백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십니다. 죄 용서가 실현되는 방식은 개인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 있습니다. 죄 용서는 단순히 신적인 칙령을 내려 과거의 실수를 잊는 문제가 아닙니다. 법적으로 빨간 줄이 없어지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빨간 줄이 없어질 수 있어도 우리의 기억속에 여전히 많은 죄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는 찾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셨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본문을 헬라어로 읽어보면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단어가 약간씩 달라집니다. 베드로가 대답하면서 ‘사랑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예수님이 처음 두 질문에서 사용하신 단어와 다릅니다. 그런데 세번째 질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앞에서 사용한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많은 해석자들이 이 점에 집중해서 해설을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예수님이 질문을 던지셨고, 베드로가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핵심은 매번 대답이 얻어낸 것은 등을 두드리는 격려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이제 어떻게 목자가 되는지 말씀하십니다. 어린 양과 양떼를 먹이고, 그들을 돌보도록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그저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풍성한 사역에 복귀하여, 확고하지만 여태까지는 불안했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진가를 보여 줄 것이라 믿어 주시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을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의 일, 자신의 사역을 베드로와 공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 입니다. 자기 양떼와 어린양을 인도하여 먹이고, 초장으로 이끄시고, 약탈자로부터 보호할 책임을 지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아시고, 양들도 그분을 압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듯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시며 예수님의 사역을 공유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역은 용서를 얻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용서 받은 자가 기쁨으로 우러나와 해야 하는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를 받았고, 기쁨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 그 사역을 감당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나를 사랑하는가? 예수님을 사랑하신다면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