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역대상 5-8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19:31-42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십자가형은 충격과 질식 또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통해 죽게 만드는 형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처음에는 발을 기둥에 지탱시키면서 몸을 치켜 올림으로 폐가 겨우 기능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의 전형적인 잔학성은 형의 집행이 끝나면 다리를 부러뜨림으로 기둥에 지탱하지 못하게 함으로 곧바로 질식이 시작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안식일 전날이었고 특별히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가 지기 전에, 즉 새 날이 시작되기 전에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기 위해 서두르는 분위기 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음으로 죽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라고 하신 신명기 21장 23절의 말씀을 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한은 희생에 대한 다른 법도 성취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뼈도 꺾지 말지며"라는 출애굽기 12장 26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희생은 내적인 측면에서나 외적인 측면에서 모두 완벽한 제물로 바쳐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군병들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것입니다. 그러자 물과 피가 흘러 나왔으며, 아직 살아 있는 경우에는 피만 흘러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글들이 쓰여졌으며 의학적인 설명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포인트는 간단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며 죽을 수 있는 육신이 된 것입니다. 요한이 물과 피를 통해 어떤 신학적인 상징을 의도했다고 많은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이 완전히 희생 제물이 되어 죽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G. 캠벨 모건은 “그리스도의 위기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해, 홀로 걸어가신 그 길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모습은 입증되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에 손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죄인들을 의롭다 하셨다. 다시 말해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시며, 그렇기 때문에 죄책감과 전혀 무관하신 그분의 자리에 사람이 설 수 있도록 해 주셨다. .. 그러므로 잠시 동안 하나님의 임재로부터의 단절을 경험하시면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과 함께 구속을 가져다 주시기 위해 통과하셨던 깊은 슬픔의 바다 건너편에 우리는 모여 있는 것이다. 그 구속은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하게 해주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며, 모든 믿은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나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죄 없으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어떻게 치르고 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유대교에서 출교 당할 것을 각오하면서 진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들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 때문이죠. 제자로 자청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버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죽임이 이 두사람에게 미친 영향은 정 반대였습니다. 이들은 숨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들어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내세워 본 들 전혀 득이 될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제자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십니까? 내일은 부활 주일입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맘컷 찬양하고 감사드리는 예배를 함께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앞에 솔직함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