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역대상 1-4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19장 17-30절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모스트(MOST)는 부활절 설교 예화 중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모스트(MOST)는 체코말로 다리라는 뜻입니다. 배와 기차가 함께 지나다니기 위한 개폐식 다리. 그 다리에서 레버를 당기며 기차를 관리하는 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 서로의 옷깃을 여며주며 아버지의 일터로 어린 아들이 따라 나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함께 해보며 오랜만의 나들이를 즐기는 듯합니다. 기차가 들어오기 전, 강 아래에서 낚시를 던지며 노는 아들을 다리 위 기계실에서 한 번씩 내려다보며 안전을 살피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 기계실 전화로 배가 지나간다는 연락을 받고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레버를 들어 배가 지나갈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와 연기가 보입니다. 그러나 기계실 안에서 다른 일을 하던 아버지는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어린 아들은 낚시를 하며 놀다가 아버지보다 먼저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아빠, 아빠, 기차가 들어와요!" 소리쳐 부르지만 아버지는 듣질 못합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위험을 감지한 아들은 자신이 다리 위로 올라가 다리 밑 기계실 레버를 당기기 위해 엎드립니다. 그 순간 아들의 몸은 다리 밑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한편, 기적소리를 듣게 된 아버지는 무의식적으로 다리 밑에서 놀고 있는 아들부터 살펴보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곧 기차가 들어오면 다리를 내려야 하고 그 주변이 몹시 위험하기 때문에 아빠는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외쳐 부릅니다. 기차는 달려오고 있고 신속하게 레버를 당겨야 하는 아버지는 사방을 둘러보다 그만 다리 아래로 떨어져버린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손 쓸 새도 없이 아들과 기차의 상반된 운명이 아버지의 손에 달리게 됩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탄 그 기차는 강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이고, 다리를 내린다면 자신의 아들은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안절부절못하며 울부짖는 아버지의 레버를 잡은 손은 무섭게 떨리고 있습니다. 결국 아들은 희생 당하고, 수 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얻게 됩니다.
이 단편 영화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MOST 영화 속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할 수 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 사건은 마지막까지 하나님 말씀의 성취과 관련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옷 나눔, “목마르다" 하신 것, 다리를 꺾지 않은 것, 찌른 자를 보게 된 것 등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님은 계획하셨고, 그 뜻을 이루어 가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MOST의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다수의 생명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도 감동적이지만, 하나님은 순간적 선택이 아니라, 태초부터 온 인류를 위해 계획하신 일들을 실행 하신 것입니다. 누군가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하나 뿐인 아들을 제물 삼기 위해 계획하셨고, 흠 없는 아들을 낮고 낮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 중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는 십자가 고통을 경험하게 계획하신 아버지 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왜 이렇게 아들을 고통 중에 있게 하셨을까요? 단 한가지 이유입니다. “사랑"입니다. MOST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기차 안의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의무”감에 의해 움직였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왜 빌라도는 세개의 언어로 죄패를 달았을까? 군인들이 나눠 가진 옷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등등을 생각합니다. 저도 말씀을 읽으며 그 의미들을 많이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모든 의문점이 묻혔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성 금요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사랑만 묵상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