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출애굽기 36-38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7장 53절-8장 20절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7장 53절부터 8장 11절사이에는 괄호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성경 사본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장 52절에서 건너뛰어 8장 12절을 읽을 때 초막절에 물과 빛을 갈망하는 청중을 향해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고 하시고, 자신을 “세상의 빛” (12절) 이라고 선포하신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본문의 말씀은 후대에 첨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괄호 안으로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괄호안의 이 사건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초막절에 일어난 실제 사건임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앞에 딜레마를 던져 놓습니다. 그들은 음행중에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한다면, 당신이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죄인들의 불신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며 또한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을 반대하게 되면, 이는 모세의 율법을 경시했다는 고소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목숨을 앞에 높고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 여인의 인권은 전혀 고려 되지 않은 사회적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땅 위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그들의 시험에 휘둘리지 않은 지혜로운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재촉하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십니다. 이러한 답변은 모세의 법과 로마의 법을 모두 지키면서, 고소하던 자들의 사악한 마음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쓰자 고소하던 자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인이 답합니다.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행이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음행은 분명히 죄 입니다. 본문의 초점은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용서하시며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죄로부터의 명확한 단절”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이 먼저가 아니라 은혜와 용서를 먼저 하십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를 무서워했습니다. 회초리를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혼날 것을 알기 때문에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시험을 망친 경우는 더 그랬습니다. 시험지라도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체벌을 무서워하며 착한척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심판하는 분으로만 오해합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 깨끗한 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깨끗한 척을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으로 나타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정죄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해! 라고 자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숨기며 도망치듯 살지 않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밝히셨습니다. 12절에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개의 “나는 …이다”라는 표현 가운데 두번째 선언 “나는 세상의 빛이다”고 하십니다. 빛은 물이나 떡과 같이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빛으로 우리를 조명하셔서 죄를 드러내주시고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초막절은 여러 종류의 빛들을 가지고 행하는 예식들 때문에 ‘빛의 절기’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빛은 일시적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는 빛의 역할을 조금 하지만 용서의 빛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참 빛입니다. 예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들어날 뿐 아니라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 앞에 서십시오. 주님과 함께 동행하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참 빛 되십니다. 그 분 없는 삶은 죽은 삶과 마찬가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