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이사야 53-55장
매일성경묵상
이사야 63:15-64:12
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19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 은총을 돌아본 예언자는 이제 시선을 하늘로 돌립니다. 공동체를 대표해서 하늘의 하나님께 굽어 살피시고 개입해 주시기를 간정합니다. 과거의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과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다시 나타나길 호소합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처소로 이중적 의미를 갖습니다. 한편으로는 거리감 곧 그분의 물러나심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을 의미합니다. 전자의 입장에 따라 예언자는 64장 1-3절에서 여호와의 강림을 간구하고, 후자의 입장에 따라 이스라엘의 절망적 현실 (17-19절)을 호소합니다.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는 64:11의 불에 타버린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과 대비됩니다. 하늘에서 모든 것을 굽어 보시는 분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그분의 이름은 옛날부터 “우리의 구속자”입니다. 사실 구약에서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는 표현은 드물게 사용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담은 표현입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양자로 삼으셨기에 이스라엘은 그분은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야곱)은 그들을 모른다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들을 구속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처지가 하나님을 떠나 낙오된 백성처럼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본문에서 “어찌하여 우리를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라고 책임을 전가하듯이 말했지만, 히브리적 사고에 따르면 땅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결정에 속합니다. 죄와 악도 그분의 능력과 통제 안에 있고 그분의 의지에 따라 허락되거나 저지됩니다. 그들의 방황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고백하며 동시에 하나님이 돌아오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64장 1절부터 예언자는 격정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호소합니다. 하나님만이 공동체의 운명을 전환 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가려놓은 칸막이를 부수고 감추어졌던 모습을 드러내듯, 하나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와주시길 간구합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내려 오셔서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 떨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2b).
3절부터 공동체는 다시 과거를 회상합니다. 이스라엘은 예상 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강림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3절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이라는 표현에는 공동체의 기대감과 신뢰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예기치 못한 때에 개입하셔서 구원해주셨는데, 지금도 생각하지 못한 때에 당신 백성의 역사에 개입하실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과 경험으로부터 공동체는 신학적-고백적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4-5절입니다.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에 근거해서 바르게 행동하는 자를,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길로 성실하게 걸어가며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이런 자들을 선대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죄를 고백합니다. 현재의 비참한 형편이 자신들의 범죄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결과임을 인정합니다. 6-7절은 공동체의 절망적인 영적 상태를 기술합니다. 스스로 죄악의 바람이 몰라 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죄를 고백한 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께 진실함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주는 우리 아버지”임을 다시 고백합니다. 아버지라는 것은 그들을 지으신 근원이라는 고백이고, 늘 그들과 함께 하는 친근한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압니다. ‘토기장이와 진흙’을 빗대어 비유합니다. 그들은 출생과 존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적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손의 작품이기에 자신을 만드신 분께 관심을 가져주길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의로운 분노를 풀고 용서해 달라고 애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9절). 공동체는 절망적 형편을 호소합니다. 자신의 형편을 잘 알고 고백합니다. 이제 잠잠하지 마시고, 직접 개입해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간구할 것이 없습니까? 우리가 기쁘게 공의를 행하고,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되시고, 우리를 지으신 토기장이 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미국의 문제, 한국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우리 가족과 개인의 문제…
12절의 고백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