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기독교 기본 교리
시 92-94
잠 28:19-28
19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21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22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23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24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28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28장 전체를 읽어보면 정치적, 경제적 힘을 바르게 행사하고, 남용하지 않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잠언들은 히스기야의 사람들이 편집하였는데, 장래 지도자로 성장해야 할 젊은 이를 위한 교육 지침서로 활용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의인과 악인, 불의한 자와 정직한 자를 대조하고 있지만, 또다른 강조점은 재물과 풍요, 그리고 가난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의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여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도록 촉구하는 교훈입니다.
이 교훈의 말씀을 묵상해 보면 2800여년전 히스기야 당시 사회에서 요구되었던 교훈과 지금 시대에 요구되는 삶의 교훈이 차이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고, 헛된 것을 쫓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하십니다. “방탕"이라는 단어는 공허한 것들이라는 뜻으로 무모하고, 헛되고, 게으르고, 가치없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 반기를 들 사람이 있을까요? 이 말씀은 모두 동의할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궁핍한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방탕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자리가 없어서 자포자기한 상태로 방탕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자 하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의도치 않게 방탕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헛된 야망을 쫓아 일확천금을 노리며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토목 건설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이분은 매일 저녁 술집에 갑니다. 건설업이 술접대가 없으면 사업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자신의 몸과 가정, 그리고 사업이 망가진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가정도 버리고 방탕한 삶을 쫓아갑니다. 처음에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시작했지만 결국 그 생활을 즐기며 사업도, 가정도 버리고 궁핍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봤습니다.
처음부터 방탕함을 알고 쫓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무언가 얻을 수 있다고,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환상속에서 그 길을 쫓아 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불보듯 뻔 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방탕을 따르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는 열린교회 성도님들을 뵈면서 열심히 삶의 터전에서 경작하시며 최선의 삶을 사는 모습에 은혜를 받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 속에서 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방탕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속히 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늘도 주님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귀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