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 설교 녹화 분입니다. 주일 설교 못 들으신 분들은 꼭 참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년일독 성경 말씀
역대하 33장 -36장
잠 1:20-33 (개역개정)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메시지 성경)
20-21
지혜가 거리고 나가 외친다.
시내 한복판에서 연설을 한다.
도로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혼잡한 모퉁이에서 소리친다.
22-24
"얼간이들아! 언제까지 무지의 진창에서 뒹굴려느냐?
빈정되는 자들아! 언제까지 빈정거림만 늘어놓으려느냐?
천치들아! 언제까지 배움을 거부하려느냐?
돌아서라! 내가 너희 삶을 바로잡아 주겠다.
보아라! 내 영을 너희에게 쏟아부을 준비가 되었다.
내가 아는 것을 다 알려 줄 준비가 되었다.
너희는 내가 불렀는데도 귀를 막았고 손을 내밀었는데도 본체만체했다.
25-28
너희가 내 충고를 비웃고 내 훈계를 우습게 여기니 내가 어떻게 너희 말을 진지하게 들을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당한 대로 갚아 주어 너희 곤경을 농담거리로 삼으리라!
재난이 일어나 너희 삶이 산산조각나 버리면 어찌하려느냐?
재앙이 닥쳐 돌무더기에 잿더미만 남으면 어찌하려느냐?
그때 너희는 내가 필요하여 큰소리로 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애타게 나를 찾아도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29-33
너희가 지식을 싦어하고 하나님 경외할 줄을 모르고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르침을 주겠다는 내 제안을 모두 무시하더니 네 스스로 무덤을 팠구나.
이제 거기 누워라.
네 뜻대로 하더니, 이제 만족하느냐?
이 얼간이, 천치들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느냐?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은 죽는 길이고, 자기도취는 자살행위다.
먼저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긴장을 풀어라.
그러고 나서 마음을 놓아도 좋다.
그때부터는 내가 너희를 지켜 줄 것이니."
잠언의 서론 (1-7장)과 부모 교훈 (8-19)이 끝난 후 여성으로 인격화된 지혜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를 “지혜시"라고 부르는데, 잠언에는 세개의 “여성 지혜 강론"이 나옵니다. (1:20-33, 8:, 9:1-6, 11) 오늘 읽는 본문은 첫번째 강론으로 정교한 시 형태로 구성된 담론이고, 생동감 있는 의인화와 수사학적인 질문들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먼저 본문은 지혜가 (우리 말에는 명사에 여성형이 없기 때문에 여성임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지혜는 길거리와 광장에서 부르고 소리를 높입니다. 여성 지혜는 자신의 청중을 ‘어리석은 자들'로 규정합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어수룩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여성 지혜 강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청중입니다. 잠언에서 ‘어수룩한 자'는 인생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나 쉽게 속임을 당하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일컫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하는 부분은 없지만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예언자처럼 말합니다. “어리숙한 사람들아 언제까지 어리숙함을 사랑하려느냐? 거만한 사람들아, 언제까지 조롱하며 즐기려느냐? 미련한 사람들은 언제까지 지식을 미워하려는가? (22절) 지혜는 언제까지, 또는 얼마나 오랫동안 어리석음과 거만과 미련을 좋아하고 지식을 미워할 것인지 질문합니다. 이제라도 돌이킨다면, ‘나의 영'을 부어주고 ‘나의 말'을 깨닫도록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혜의 초대에 응하면, 그들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받을 것입니다. 지혜의 영의 최종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목소리를 높여 애타게 사람들을 부르고 지혜의 영과 깨달음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듣기 싫어합니다. 지혜가 손을 뻗었지만 돌아보는 사람 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의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지혜는 자신이 거절 당한 것에 격렬하게 분노합니다. 지혜는 자신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두려운 일이 닥칠 때, 내가 조롱하겠다.” 그리고 경고합니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처럼, 너희의 재난이 사나운 폭풍처럼 불어닥치고, 고통과 학대가 덮칠 것이다.”
지혜가 이같은 심판을 예언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들이 지식을 미워했기 (29절) 때문입니다. 잠언에서 지식을 미워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핵심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주님의 경외가 지혜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지혜를 거절하는 것은 심판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혜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혜의 책망을 업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성문과 거리에서 소리치며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외쳤지만, 그들은 끝까지 지혜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의 길의 열매를 먹고 자기들의 계략에 만족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멸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지혜의 부르짖음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식을 얻고 지혜와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내것으로 만들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조건 성경을 많이 읽는 다고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일년에 몇차례 성경을 통독한다는 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성경을 알려고만 했습니다. 그 모습은 교만했으며 오히려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순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단 한절을 읽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확신하며 읽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서서히 차오르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며 하나님의 뜻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