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말씀
열왕기상 21-22장
출애굽기 1:1-22
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 아버지 야곱과 모든 형제들을 초청하여 애굽 고센땅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옮기신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손을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하겠다고 하셨는데, 만일 야곱의 가족들이 계속 가나안 땅에서 유목민 생활을 했다면 그들은 민족으로 성장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인구 증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정착하여 인구 증가를 이룰 수 있도록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고,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과 그 가족들 70명을 애굽으로 초청해 고센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약 400여년이 지났습니다. 70명으로 시작된 야곱의 후손은 12형제들을 중심으로 12지파를 이루며 히브리 민족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당시 인구 상황으로 볼 때 급 성장하는 히브리 민족을 보는 애굽사람들은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인구가 많은 나라들 중국, 인도, 미국 등이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다른 나라들의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한국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국가 재난으로 생각하며 혼인과 출산을 장려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애굽은 새로운 왕조가 시작하면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되었기에 애굽은 언제든지 군사를 일으켜 애굽과 전쟁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증가하지 못하도록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11절에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뒤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민족으로 성장하고 힘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에 12절에 “학대를 받을 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번성할 수록 애굽의 근심은 커져갔고, 그 불씨를 끄기 위해서 더욱 엄한 일을 시키고, 급기야 히브리 산파에게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 아이들이만 살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남자아이들을 죽이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민족으로 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오게 되는 발단이 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을 하는 시작이 순조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떠나고 새로운 곳으로 간다고 하면 준비가 잘 된 상태에서 기분 좋게 출발하고 정착하는 것을 상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간 평화롭게 살다가 애굽을 나오는 발단은 애굽에서의 핍박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핍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셨을까요?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화로운 상태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주셨다면 누가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을까요? 애굽은 400년을 살던 땅입니다. 삶의 터전이 있고, 어느 정도 잘 적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애굽을 나가라고 했다면, 아마 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땅을 좋아했냐면, 모세가 태어나 80살이 될 때까지 모진 핍박 당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 살면서 그렇게 핍박 당했던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아마 핍박이 없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고 애굽땅에서 영원토록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애굽에 살 사람들이 아님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갈 동력을 얻기 위해서 ‘핍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핍박을 통한 고통은 무조건 저주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깨우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신약의 12 제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하루에 수천명씩 회개했습니다. 7 안수 집사를 세워 교회를 관리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자들이 예루살렘이외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라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곳에 안주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핍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에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핍박은 분명히 고통입니다. 하지만, 핍박이 시작된 이후 사도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진출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핍박은 고통이지만 심판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받기 시작하는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시고, 모든 민족이 출애굽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핍박이 있습니까? 핍박은 고통스럽지만 그 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출애굽의 사건이 기다릴 수 있고, 세계 선교의 발판을 마련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속에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