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말씀
역대하 19-21장
오늘의 말씀 묵상
출애굽기 14:1-1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에담을 떠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돌이켜" 홍해의 어느 해변에 이르렀습니다. 홍해에 대해서 몇가지 논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홍해라 함은 영화에서 보듯이 망망 대해를 상상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씀하는 홍해는 “Red Sea”가 아니라 “Reed Sea” 즉 갈대의 바다가 그 원어 입니다. 따라서 바닷물에서는 갈대가 자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마주한 홍해는 갈대가 무성한 내륙의 호수 근처를 통과 했을 것으로 주장합니다.
반면 자연 주의적 설명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한 홍해는 갈대가 무성히 자란 비터 호수 (Bitter Lake)였으며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현상이 특별하게 발생한 덕분에 그들이 그 호수를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비터 호는 수에즈 운하가 관통하는 거대한 호수로 바뀌었고 운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바닷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카수토에 의하면 고대에는 비터 호가 다소 규모가 작은 여러 호수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중 가장 큰 호수를 건넜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비터 호가 바다의 만조 시에 홍해와 연결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밀물 때는 바닷물이 들어와 채우고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면서 물이 갇힌 여러 호수들이 생겼을 것이라는 추론을 제기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인들은 비터 호수를 바다로 간주했습니다. 그곳을 얌 수프라고 부른 것입니다. 다만 그 호수는 특수하게 민물 습지와 겹쳐 있는 이유 때문에 해변에 거대한 갈대밭이 조성되어 ‘갈대 바다'를 뜻하는 명칭이 붙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한 바다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들이 있지만, 2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넘기에는 망망대해던, 작은 호수던, 갈대 숲으로 이뤄진 민물이던, 그들은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마른 대로를 걸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물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애굽의 바로가 마음을 다시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뒤따라 갔고, 애굽과 그 군대가 가까옴을 이스라엘 백성이 보고 두려움에 빠져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사실 본문에 나오는 바로의 반응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가라고 했으면서 그와 신하들은 왜 그들이 도망갔다는 사실을 이제 들었다고 말할까요? 여러 학자들은 바로가 3일길의 여행과 그들의 짧은 종교 축제만을 허용했기에 그들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추격전을 벌였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바로와 모세가 담판을 지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로의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 탈출하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너무 성급히 그들을 풀어줬다고 생각하며 후회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그는 최종적으로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번복합니다. 5절에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들을 섬기는 자들로 규정했습니다. 출애굽은 바로를 섬김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으로 전환하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바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 이스라엘을 쫓아갑니다.
이 모습을 발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원망 하면서 자신들의 속 마음을 꺼내 놓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은 차라리 노예처럼 부림 당하는 것이 좋을 뻔 하였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알지 못합니다.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 투쟁하지만, 그들은 그 삶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를 섬기며 노예로 사는 것이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원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저 같으면 그들의 참을 성 없고, 믿음 없는 모습에 화났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들을 달래십니다. 그들의 무지함을 참으십니다. 믿음 없음에도 신실하신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탁하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구원을 보라! 하십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두려워말고 가만히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앞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홍해가 가로 막고, 애굽 바로와 군대가 쫓아오는 상황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원망섞인 말이라도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서 나오는 원망에 대해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부르짖으십시오. 애원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