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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일독성경말씀
신명기 8-10장
누가복음 16:1-13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6장을 읽으면 우리가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입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청지기는 주인의 모든 권한을 이임 받아 재산을 관리하던 사람들입니다.
부자들은 여러 곳에 재산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여 자주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을 청지기로 세워 주인의 도장을 갖고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실하고 똑똑한 청지기가 있으면 부자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반대로 청지기가 성실하지 못하면 부자의 재산이 줄거나, 혹은 그 평판도 나빠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유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맘대로 흥청망청 주인의 돈을 썼을 수도 있고, 잘못 투자하여 손해를 봤을 수도 있습니다. 이 소식이 주인에게 전해지자 주인은 그를 불러 셈을 하고 소유를 낭비한 일이 밝혀지면 청지기 직을 빼앗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청지기는 그의 직을 빼앗기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봅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러울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묘안을 생각해 내는데,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그 빚을 얼마간 탕감해 주었습니다. 100말의 기름을 빚진 자는 50으로 탕감해 주었고, 밀 백석의 빚을 진 사람은 80으로 줄여 주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그를 자기 집으로 영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주인 몰래 자기 맘대로 주인의 빚을 탕감해 준이 청지기의 행동이 그렇게 옳지 않아 보이는데, 예수님은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이 말씀을 왜 하셨는지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14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시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의 중심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지 못함”을 알려 주시고자 함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을 더욱 풍성히 해야 하는 청지기적 사명을 가진 바리새인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불의한 청지기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유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칭찬을 받습니다.
제가 생각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는 그나마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쫓겨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하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바리새인들은 그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며 삽니다.
그리고, 둘째는 빚을 탕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말씀하시는 주인은 하나님을 비유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원래 어떤 분이냐 하면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시고자 하는 분입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가 있다는 것을 성경은 빚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대속 제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비록 자기가 살려고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주인이 빚을 탕감해 주는 분임을 알게 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바리새인들의 역할이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서를 들고서 사람들을 혹독하게 다스리며 빚에 빚을 더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면 그 빚을 탕감해 주는 분임을 알게 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역할인데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서 사람들을 더욱 빚을 지게 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8절에서 마무리 되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9절에 더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이 도대체 어떤 말씀인지에 대해서 이해되지 않습니다. 뇌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인가? 아니면, 친구를 사귈 때는 꼭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인가? 탕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돈을 다 쓴 둘째 아들은 돈이 떨어졌을 때 어떤 친구도 남지 않았음을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지..
여러분은 이미 아실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의의 재물이라는 것은 나쁜 재물 즉, 청탁이나, 뇌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재물을 뜻합니다. 복음서에서는 재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세속적이고 불의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NIV는 ‘세속의 재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불의한 재물, 의로운 재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통용되는 재물, 부유함을 의미하는 것이 '불의한 재물' 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불의의 재물로' 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 문장에는 전치사가 두 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는 '안에서 밖으로' 라는 의미를 가진 ek 라는 전치사인데 재물 앞에 쓰여져 있습니다. 이는 “재물안에서 밖으로 나오라”로 번역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밖에서 안으로' 라는 의미의 eis 라는 전치사입니다. 영원한 처소 앞에 붙어 있습니다. “영원한 처소안으로 영접하리라” 로 번역됩니다. 정리하면 9 절의 의미는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어라'로 해석되는 것 보다 오히려 이 말은 "불의한 재물(이 주는 유혹)에서 '나와서' 너희를 영원한 집 ‘안으로’ 인도해주는 친구를 사귀라"는 의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재물로 세상의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혼까지 맡아줄 그런 친구를 사귀라는 말입니다.
재물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도구….이어서 11 절에 재물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씀은 곧재물을 재물로 다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물은 소비될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재물은 재물일 뿐입니다. 재물을 우리의 영원을 맡길만한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재물을 충실하게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재물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처세술을 말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 나를 경험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이 하나님이 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의외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재물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니 삶의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물을 거의 하나님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재물을 주시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재물은 여러분의 영혼을 책임져줄 실체가 못됩니다. 따라서, 재물은 재물의 자리에 돌려보내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보좌에 우리의 주인으로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법입니다. 재물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이길을 같이 가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이것이 복된 길인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묵상하며 나는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묵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