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말씀 - 민수기 24-27장
눅 13:22-35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당시 유대교 사회에서 쓰여진 문서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외경으로 알려진 에즈라 4서 8:1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분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을 만드셨지만, 다가올 세상은 단 몇 사람을 위한 것이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했던 구원 받은 사람들의 수에 대한 질문은 당시 관심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앞에서 18년 동안 귀신에 사로잡혀 꼬부라져 있던 여인을 회복시키시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될 것이라고 가르친 것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처럼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을 것인가? 아니면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처럼 소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인가?를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것이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직접적인 답변 보다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이 질문과 대답에서 우리는 구원에 대한 진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소수만 받도록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결코 할당제가 아닙니다. 구원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원하기는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힘스라는 것은 운동 선수가 시합을 하거나 군인이 전쟁을 치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구원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고, 제한이 없으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만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은 언젠가 닫힙니다. 닫히기 전에 반응해야 합니다. 내일로 연기하고 문이 닫힌 후에 열어 달라고 간청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는 문이 닫힐 때 사람들이 억울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문 안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문 밖에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와 자신과의 관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공동체에 속하고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구원받은 증거는 아닙니다. 여러분,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자들은 그에 따른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많은 성도님들이 종말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황당한 경우와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황당한 경우는 평생을 구원 받은 줄 알고 살았는데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고, 여러 종교 활동을 통해서 당연히 나는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았는데, 결국 구원의 확신 없이 살다가 천국 문 앞에서 거절당하는 경우 얼마나 황당할까요? 반면에 과거에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믿음이 흔들려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라는 불확실한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는 경우는 하나님 앞에서 당황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당한 것 보다는 당황스러운 것이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흔들린 믿음으로 얼마나 부끄러울까를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확실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로서 행실을 바르게 하여 좁은 문이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그 문에 들어갈 확신으로 힘있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좁은 문처럼 모일 수 있지만 역사의 끝에는 동서남북에서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고, 먼저 된 자들이 나중되고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되는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저의 오직 한가지 관심은 열린교회 성도님들 모두 구원 받는 것입니다. 저는 지겹도록 이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황당한 일을 경험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기쁨으로 천국에 들어가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구원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