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일독 성경통독 본문: 창세기 24-26장
오늘의 묵상 본문: 누가복음 3:15-38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 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4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25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26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27 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28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29 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30 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31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32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33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34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35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
36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37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은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소망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요한의 행색과 사역은 백성들이 메시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한을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그들의 생각을 알고 그리스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오시는 이는 요한보다 높은 분이기 때문에 요한은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주인이 식사하려고 앉을 때 신발 끈을 풀어주는 일은 하인의 몫입니다. 요한은 오시는 이와 자신의 지위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둘째,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지만 그는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의 물 침례는 회개와 죄 사함을 상징했습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는 정화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줄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과 불은 물과 같은 정화와 씻음의 기능을 의미합니다. 다만 물 침례는 죄 씻음에 그치지만 성령과 불 침례는 하나님의 내주 하심으로 실제로 구원을 주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자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침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요한의 겸손과 예수님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회개를 외치며 예수님이 시작한 하나님 나라에 초대하지만, 그에게는 죄를 용서하고 구원할 능력은 없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태어나 자랐고 광야에서 경건 훈련을 받았어도 구원을 줄 수는 없습니다. 요한은 구약의 예언대로 태어나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자 (7장 25-28절) 이지만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알고 그에게 온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에게로 향하게 했습니다. 예수님 만이 참 구원자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요한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도 미리 기술했습니다. 요한 당시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가 이복형제인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설득해서 이혼하게 만들고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요한은 율법을 거슬러 형제의 아내를 취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왕의 재혼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행위는 백성을 선동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헤롯은 요한을 가두게 되고, 결국 참수형을 당하는 운명을 맞이 하게 됩니다. 이런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요한은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성합니다.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푼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앞으로 탄생하게 될 예수 공동체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 시작을 알리면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누가의 족보는 마태복음의 족보와 순서가 다른데,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소개하며 마태복음을 시작했습니다. 마태가 함께 하는 공동체는 유대인이 주로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가 복음을 전하는 대상들은 데오빌로 각하를 비롯하여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아들로서 온 인류와 결속된 아들이며 참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을 족보를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원자로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를 알아 본 요한은 겸손히 그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침례요한의 삶을 묵상해 봅니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기대를 따라 살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과 자신의 사명을 통해 자신을 정의했습니다.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며, 자신이 하는 일은 메시야가 오셔서 할 일과 비교할 수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오직 그분을 드러내며, 그분이 하실 일을 백성이 대비하게 하는 것만이 그의 관심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으로 하루를 살아가십니까? 이 질문에 확실히 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길을 잃지 않고, 주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1월 둘째주간 암송 요절:
예수님의 인성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눅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