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일독 성경 말씀:
30일 토요일: 레위기 5-7장
31일 주일: 레위기 8장 - 10장
레위기 개요
매일 성경 묵상: 누가복음 9장 51-62절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결심하셨다는 말의 원어는 "얼굴을 정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얼굴을 정했다는 것은 이사야 50장 7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은 인간적인 성공이 아니라 수난과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셨기 때문에 굳은 결의를 하시고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준비 목적으로 먼저 보내셨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마을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배척하지 않으시고 기회 있을 때 마다 사마리아 마을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의 목적지가 예루살렘인 것을 알고 제자들을 배척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을 경멸하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거절당해 화난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사마리아 사람들을 심판하기 원하시는지 묻습니다. 요한은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사건에 대해서 분노하고 금지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 당시에는 성격이 급하고 폭력적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고 다른 마을로 들어가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시점에서 환대를 기대했지만, 평소에 경멸했던 사마리아 마을에서 거절 당해 당황해 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앞으로 당할 고난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므로 주의 길은 왕들처럼 권위를 행사하거나 영광을 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힘으로 반대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제자들은 그들을 파송하신 예수님의 운명처럼 배척 받을 것입니다. 그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은 영광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뒤 완전히 사람이 변합니다. 그는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현대인의 성경)
체코의 종교개혁자 ‘제롬’의 말에 의하면 사랑의 사도 요한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서 장기간 설교하는 것이 힘들어 졌을 때, 가끔씩 나와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한 마디씩 권면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했다고 한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을 권면할 때마다 온화한 얼굴로 ‘나의 아들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해서 하니까 에베소 교인들은 식상한 나머지 이렇게 건의를 했다고 한다. ‘사도님, 왜 똑같은 말씀만 계속 되풀이 하십니까?’라고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노사도는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니라.’라고 말했다. 요한은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며 평생 살았습니다.
본문은 이어서 예수님이 연이어 세 사람을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첫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편한 삶을 위해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향하는 길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고난과 수치를 당하는 여정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첫번째 사람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예수님의 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예수님 앞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유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뼈를 모으는 것은 자식의 의무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에 이 요구는 합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의 요청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 보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두번째 매장을 끝내고 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다 마무리 한 다음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가 말한 것은 첫 번째 장례가 아니라 매장 이후에 남은 뼈를 모아서 조상들의 뼈와 합치는 두 번째 매장입니다. 유족은 열두 달에 걸쳐 애곡을 하고 나서 뼈를 모읍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아버지를 끝까지 보살피고 나서 따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매장의 날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따르는 것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가능성을 보시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사람은 아마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사역이 끝나고 승천하실 때 까지 따르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하라 하십니다.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것은 당연히 죽은 뼈들이 알아서 뼈를 정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 묘에 있는 다른 뼈들로 아버지의 뼈를 다시 매장하도록 두라는 뜻입니다.
세번째 사람은 조금 다른 조건을 말합니다.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이 요구 또한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바람직한 행동입니다. 구약의 엘리야는 엘리사가 그를 따르지 전에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요구가 어떤 행위보다 더 우선되고 중요하다는 깨달아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세상 일도 중요할 때가 있지만 세상 일 다 하면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들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삶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존중해 주십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의 길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장례식에 불참해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은 가족들과 작별인사 없이 떠날 수 있는 급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결단 없이는 예수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결단이 되어 있는지요?
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