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통독 창세기: 34-36장
누가복음 4:31 - 44
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가버나움에 다시 오셨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동네”라고 번역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πόλιν” (City) 도시로 되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나사렛 보다는 훨씬 큰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 쫓으시고, 병자를 고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누가는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볼 때 크게 소리 지르면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서로의 공통 관심사가 없는데 왜 자기들의 일에 개입하는지 따지는 말투입니다. 사단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이 세상은 죄로 물들어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귀신은 당신과 상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상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성 육신 하심으로 이 땅이 더이상 사단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권세에 휘둘리는 세상을 해방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참 하나님 되심을 귀신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십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정체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밝힙니다. 이 칭호는 예수님이 침례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들린 칭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과 거룩한 영, 곧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의 세력을 파괴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귀신들의 세력에 사로잡히고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같은 능력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 퍼지게 됩니다. 가버나움에서 더러운 귀신을 만나 귀신 들린 자를 해방시키는 장면은 예수님의 사역이 사탄을 공격함으로 갇히고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시몬의 집에 들어가 장모를 치유하십니다. 시몬의 장모는 중한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을 때와 마찬가지로 꾸짖으셨습니다. 신약과 랍비 전통에서 열병은 하나님의 심판이나 귀신 들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책망하심으로 열병을 쫓아내신 것입니다. 이 표현 역시 예수님의 사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질병에 눌린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얹어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의 긍휼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치유하자 쫓겨난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공포에 질려 소리지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귀신을 책망하시며 침묵을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막으셨을까요? 예수님은 치료자로,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섬기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의 소리는 공포에 질려 내는 소리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오해하게 만드는 소리였습니다. 그런 소리를 막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으로 사람들의 신앙 고백을 이끌어내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정체는 십자가 달리기까지 낮아지는 종의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날이 밝자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쁠 수록 한 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기도하시며 하나님과 충분한 교제의 시간을 갖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습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마음을 들어냅니다. 자신들을 떠나지 못하게 만류합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칭송했지만, 결국 그들도 나사렛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예수님의 밝을 묶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도시들에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해야 하고 이를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44절에 선포한다는 43절의 복음을 전하다와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종으로서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함께 말씀 나누는 성도님들과 “하나님 나라 복음”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통치하고, 백성들이 그 통치에 순종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든자들이 일어나는 가시적인 현상들이 일어나는 곳이 하나님 나라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샬롬이 충만한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우리 삶 가운데 실현 되어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삶에 임했는지, 하나님이 통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주의 암송요절
예수님의 부활
고전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